1998년 금융시스템개혁법의 일환으로 일본 증권업은 등록제로 바뀌어 신규증권사의 진입이 용이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과당경쟁의 방지와 겸업의 원칙적인 금지라는 취지에서 적용된 면허제의 예방적 성격이 강해 증권업에의 신규진입은 거의 없었다. 이후 20년간 일본 증권업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의 등장으로 경쟁도의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 본 고에서는 일본 증권업의 현 경쟁구도와 고령화 심화에 따른 최근 변화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0여년간의 변화
1990년대까지 일본 증권업은 노무라, 다이와, 닛코, 야마이치 등 4대 대형종합증권사가 모든 업무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식위탁매매에 특화된 소규모 중소 증권사 중 일부도 이들 대형사의 계열사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4개사의 과점체제였던 셈이다. 그러나 버블경제 붕괴 이후 증권시장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1997년 야마이치증권의 파산을 기점으로 많은 중소 증권사들이 도산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타 금융회사가 증권사의 경영권을 쉽게 획득하거나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특화증권사가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등록제가 도입된 것이다.
등록제 도입 직전인 1997년 일본 증권사 수는 291개사로 현재의 265개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1998~2015년 기간 동안 신규진입한 일본 국내증권사(외국계 제외)는 약 220개사에 달하고, 폐업하거나 합병으로 퇴출된 증권사도 약 230개사이다. 생존한 증권사들의 경우도 기존 지배주주가 지분을 매각하여 타 업종기업이 진입하는 사례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먼저, 일본 3대 메가뱅크의 계열 증권사가 기존 독립계 대형사인 노무라증권, 다이와증권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아래 표에서는 은행계열 증권사의 합병을 통한 성장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노무라증권과 다이와증권의 계열 증권사들을 다수 매수하여 종래 보유하고 있던 계열증권사들과 합병하였다. 당초 메가뱅크 계열 증권사들은 그룹 내 은행과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독립계 대형사들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전까지 5개 대형사 중에서는 독립계 증권사가 규모와 실적 면에서 아직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최대의 변화는 온라인증권사의 등장이었다. 진입규제의 변화와 함께 주식거래 위탁수수료도 1999년에는 완전 자유화되었는데, 이러한 규제완화를 등에 업고 등장한 것이 온라인증권사였다. 점포가 없는 온라인증권사는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20~30대 젊은 투자자층을 주고객으로 하고 있으며, 2014년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전체 개인주식거래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점포형 증권사에 해당하는 기존 증권사들이 온라인거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 동일한 증권사 내에서도 온라인거래와 오프라인 거래의 수수료 차는 상당하다. 다시 말해, 점포형 증권사들은 고객이 온라인거래로 이동할 경우 기존 영업부문에서 수익이 크게 축소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체재적인 성격으로 인해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라인증권사들이 수수료 자유화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온라인증권사인 SBI증권의 경우 2015년 기준 고객 계좌 수가 300만을 넘어섰는데 당시 1위인 노무라가 530만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6년부터는 지방은행이 해당지역에 증권회사를 설립하거나 거점지역이 동일한 중소증권사를 자회사로 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이들 지역은행 증권사는 법인영업 및 자기거래 등을 함께 영위하는 종합증권사라기 보다는 지역 내 펀드판매와 신용거래 융자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자본집약적인 성격이 낮은 업무특성상 레버리지비율도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며 자본확충을 통한 대형화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증권업의 특징은 새로운 유형의 증권사가 진입하면서 고객층이나 지역별로 비교적 시장분할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2013년 이후 지난 5년간은 이러한 경쟁구도가 고착화되어 당분간 변하지 않을 듯이 보였다.
고령화로 인한 최근 변화들
최근 이러한 안정적인 경쟁구도에 영향을 끼칠만한 변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고령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첫째, 수수료 체계의 변화 가능성이다. 일본 금융청은 2016년부터 “저축에서 자산형성으로”라는 표어를 내걸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투자는 늘고 있지 않다. 2017년 3월 은행과 신용금고의 저축잔고는 1,000조엔에 달했지만, 2016년말 시점 펀드보유액은 96조엔에 불과하다. 이에 금융청은 금융회사의 신임의무(fiduciary duty)를 강화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2017년 3월 「고객 중심의 업무운영에 관한 원칙」을 발표하였다. 대부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고령층의 경우 증권사 등이 자사이익만을 앞세워 최적인 투자상품을 팔지 않는다는 불신이 크다고 본 것이다. 원칙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고객중심의 서비스를 보다 높은 차원에서 제시하도록 구체적인 운영방침을 각자 제시할 것을 의무화하였다.
증권사의 리테일영업에 있어 이러한 지침이 실제로 어떻게 반영될지는 아직 명확치 않다. 다만 증권사 직원이 특정상품이나 서비스를 선정해서 파는 방식이 아닌, 보다 폭넓은 방식의 고객지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수료가 높은 상품판매를 높이려는 유인을 줄여 증권사가 장기 자산운용을 지향하면 고령층의 신뢰도 함께 높아질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다만, 장기적인 자산운용을 목적으로 한 인덱스형 상품에서는 저비용화가 진행 중이다. 예탁자산이 늘어도 수익이 생각처럼 늘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가 관건이다.
둘째, 고령층 투자자에 대한 영업행태의 변화이다. 1980년대 버블경제 시기, 30~40대에 증권투자를 시작한 고객들의 고령화에 대한 대응이 최대의 경영과제가 되었다. 최근까지도 일본 증권사들은 75세 이상의 고객을 고령자로 보고 자율적으로 영업활동을 제한해 왔다. 하지만 점포형 증권사의 경우 많은 고객이 이미 70세를 넘어서면서 자산을 정리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75세 이상의 고령층에게도 본격적으로 영업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올해부터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고객의 기업승계 및 상속 등에 대해 조언이 가능한 전문가를 전국 지점에 배치하는 등 증권업무 이외의 서비스를 추가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에서는 전국적인 네트워크와 많은 부유층 고객 정보를 가지고 있는 메가벵크 계열의 증권사가 보다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온라인증권사와 점포형 증권사의 경쟁 심화이다. 그동안 점포형 증권사에서는 새로운 젊은 세대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온라인증권사에 기존 수익원을 빼앗기지 않는 데 주력해왔던 탓이다. 하지만 기존 고객들의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점포형 증권사들이 신규투자를 통해 젊은 투자자층에 대한 공략에 나서고 있다. 노무라증권이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과 합작하여 온라인증권사를 설립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다이와증권도 핀테크업체와 함께 설립한 온라인증권사를 통해 4월부터 주식위탁수수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젊은 고객층을 확장하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기존 온라인 증권사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은 분명하다.
일본의 증권사들에게 고령화는 이전부터 큰 문제였으나 지금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일본의 현 고민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닌 시기에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로 인한 일련의 변화들이 향후 일본 증권업을 어떤 모습으로 바꿀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장정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최종편집일:2024-05-03 09: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