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취약국 중심의 신흥국 금융불안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은행은 지난 11월 18일 ‘과거 사례와 비교한 최근 신흥국 금융불안의 특징’ 보고서를 통해 “올 들어 신흥국 금융시장은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채권에 대한 가산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등 불안 상황이 이어지는 모습”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병걸 한은 조사국 국제종합팀 과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및 외환부문의 양호한 건전성 등으로 대외리스크에 대한 위험 노출도는 낮은 수준이나 대외부문의 잠재적 리스크가 작지 않으므로 신흥국 금융불안의 전개과정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금융불안의 특성상 신흥국 전반으로의 확산시 진행과정이 매우 빠르다는 점에서 신흥국에 대한 익스포저(대출, 투자) 등 위험요인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의 ‘과거 사례와 비교한 최근 신흥국 금융불안의 특징’ 보고서 내용을 살펴본다.
최근의 신흥국 금융불안 현황
신흥국 금융시장은 올 들어 주식 및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경색되는 모습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주가가 올 2월 약세국면으로 전환한 이후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올 2~10월중 주가(MSCI 신흥국 지수)는 23.4% 하락하였으며 최근 수준은 2010년 이후 장기 평균을 하회하고 있다.
채권시장의 경우도 신흥국 채권에 대한 부도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채권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신흥국 채권에 대한 가산금리(미 국채 기준)와 CDS프리미엄(부도위험전가 수수료)이 2~10월중 각각 103.8bp, 91.4bp 상승했다. 다만 2013년의 ‘Taper Tantrum’과 2015년의 ‘중국경기 둔화 우려’ 시기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이다.
신흥국 시장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외환시장에서도 뚜렷해진 상황이다. 신흥국 환율(JP모간 신흥국 통화 지수)을 보면 10월말 현재 2월초 대비 14.4% 하락(통화가치 절하)하여 2010년대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신흥국에 대한 해외자본 유출입 상황도 외국인 증권투자자금의 순유입규모가 올 들어 대폭 감소했다. 민간 투자회사의 펀드자금은 순유입에서 순유출로 전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신흥국 금융불안의 주요 요인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화 강세에 의해 촉발됐다.
미 연준은 정책금리인 Federal Funds 목표금리를 올 1~10월중 3차례에 걸쳐 25bp씩 인상하였으며 동 기간중 시장금리도 정책금리 인상분만큼 상승했다.(10년물 국채금리 기준 +75bp) 시장금리 상승이 이어지면서 약세기조를 보여 왔던 미달러화도 올 4월 이후에는 강세 기조로 전환했다.
미국의 시장금리 상승 및 달러화 강세는 신흥국에 기 유입된 해외자본의 유출압력을 강화시켜 금융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장기금리와 신흥국 주가의 상관계수를 산출해 보면 역의 상관관계(올 2~10월중 –0.57)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Taper Tantrum’ 당시와 유사한 수준이다. 아울러 달러화 강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누적된 달러화표시 부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부담을 증가시켜 신흥국의 대외 취약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IMF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정책금리 인상 및 자산매입축소)로 인한 신흥국 자본유출 규모가 2018~19년중 9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중간 무역분쟁에 따른 불확실성 확대가 세계교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의 금융시장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통상압력은 광범위한 부문에 걸쳐 전격적으로 실시되면서 WTO 출범(1995년) 이후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로 평가된다. 미국이 7~9월중 관세를 부과한 중국산 수입품 규모는 약 2,500억달러로 미국 대중 수입품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 1,100억달러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분쟁이 심화되고 있다.
미·중간 무역분쟁은 세계교역 및 투자 감소, 글로벌 공급망 훼손 등으로 원자재 및 중간재 수출이 많은 신흥국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중간 통상갈등이 심화된 6월중 주가와 통화가치 하락폭이 큰 나라들을 보면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및 중남미 국
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과거 사례와의 특징 비교
변동성 : 상대적으로 덜 심각 = 최근의 신흥국 금융불안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생한 여러 차례의 불안 사례 중 주요 금융 및 외환시장 지표의 변동폭이 가장 작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내외 불안요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산금리, CDS프리미엄 등 주요 금융시장 지표의 절대 수준과 상승폭이 과거 사례를 모두 하회하고 있다. 주가의 경우 누적 하락폭이 ‘중국 경기 둔화’와 ‘유럽 재정위기’ 다음으로 크게 나타났으나 지속기간을 감안한 하락속도(월평균 하락률)는 가장 완만한 상항이다.
외환시장 지표의 경우 환율은 과거 사례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우나 해외자본 유출 상황은 상대적으로 완만한 수준이다. 특히 신흥국으로부터의 펀드자금 유출이 가장 심각했던 ‘Taper Tantrum’ 시기에 비해서는 유출 강도가 제한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흥국의 전반적인 대외 취약성이 과거 사례와 비교해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금번 금융불안의 심각성이 덜한 점은 촉발요인의 파급영향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GDP 대비 총외채 비율과 외환보유고 대비 단기외채 비중 등 신흥국의 외채수준은 자금유출이 가장 심각했던 ‘Taper Tantrum’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다. 대외채무 상환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경상수지 또한 2015년부터 소폭 의 적자기조로 전환됐다.
국가별 상황 : 차별화 확대
금번 신흥국 금융불안이 전반적인 심각성은 과거 불안 사례에 비해 덜하지만 국가별로는 편차가 상당하다.
대외여건 변화에 민감한 환율 및 CDS 프리미엄의 움직임을 보면 아르헨티나, 터키, 브라질, 남아공 등의 금융시장이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 반해 태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와 멕시코 등은 시장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이 같은 국가간 차별화 현상은 불안 양상이 상당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과거 사례와 구별된다. 대표적으로 ‘Taper Tantrum’ 당시에는 극히 일부를 국가를 제외하면 불안의 정도가 대체로 유사한 상황이다.
한편 금번 사례에서 취약국으로 드러난 국가들은 불안 상황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더욱 확대되면서 과거 ‘Taper Tantrum’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발 금융 긴축이라는 공통된 충격에 대해 신흥국 금융시장이 국별로 다르게 반응하는 것은 내재된 취약성이 상이한 데 주로 기인하고 있다. 실물경제 측면에서는 성장률이 낮은 국가에서, 대내건전성 측면에서는 재정수지가 큰 폭의 적자를 보이거나 악화된 일부 국가에서 금융불안이 뚜렷한 상황이다.
이들 금융불안 국가들은 대외지급능력 측면에서도 만성적 경상수지적자 기조가 지속되고 GDP 대비 외채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특히 높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외채 비중이 50%를 넘는 터키에서 금융불안이 촉발된 점은 달러화 강세 기조가 금번 금융불안의 주된 요인임을 시사하고 있다.
진행기간 : 가장 장기간 지속
금번 신흥국 금융불안은 과거 사례와 비교할 때 강도는 약하지만 가장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장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채권 가산금리를 기준으로 불안국면의 지속기간을 산정해 보면 금번 불안은 9개월째 진행중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Taper Tantrum’(2개월)이 가장 짧고 ‘중국경기 둔화 우려’(9개월) 사례는 금번 불안과 비슷한 9개월가량 지속됐다.
금번 신흥국 금융불안의 장기화 현상은 2~3년전부터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계획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금리인상이 본격화된 지난해의 경우 미국의 물가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상존하면서 정책금리 인상(+75bp)이 시장금리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음에 따라 신흥국 금융시장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다. 국채(10년물) 금리의 경우 지난해 기말 기준(2.40%)으로 2016년(2.45%)보다 소폭 하락하였으며 달러화도 9.9% 하락했다.
반면 올해 들어서는 성장세가 견조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잠재적 물가목표 수준(2.0%)에 근접하면서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달러화도 강세로 전환함에 따라 취약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양호한 실물경제 여건 등을 반영하여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함에 따라 앞으로도 금리인상 시점을 전후하여 취약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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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2024-05-17 09:02: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