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동주의 펀드 그레이스홀딩스가 사모펀드 운용사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를 통해 한진칼 2대 주주로 등극하면서 시장에서 연일 화제다. 한진칼 지분 9%를 취득한 KCGI가 본격적 경영참여 전망들이 쏟아지자 KCGI는 “경영권 장악 의도는 없다”며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란 KCGI의 정체성과 매입 지분율을 생각하면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인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하고 있는 펀드라면 장기 가치투자 펀드로 봐야하지만 KCGI가 이번에 굳이 9퍼센트의 지분을 매입한 점과 여러가지 규제가 따르는 사모투자형 경영참가형 펀드로 설정한 점 등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KCGI의 경영참여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KCGI가 한진칼 주요주주로서 이사 선임, 배당 및 투자 확대 등을 위한 목소리를 얼마나 낼 것인지 관심이 높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바빠지고 있다. 한진그룹 측은 그레이스홀딩스의 지분 매입과 관련해 공식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계열사 대표와 관련 임원들이 모여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등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11월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투자목적 유한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가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했다고 전날 저녁 공시했다. 이에 따라 행동주의 펀드 그레이스홀딩스의 대주주인 KCGI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17.84%)에 이어 한진칼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주주 행동주의는 특정 기업 지분을 대량으로 미리 사들인 뒤 해당 기업 경영진에게 구조조정, 배당 확대, 경영진 교체 등을 요구하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경영 참여를 통해 지분 가치를 올리고 여기서 수익을 올리는 게 목적이다.
그레이스홀딩스의 대주주인 KCGI는 기업지배구조개선을 표방하는 사모펀드(PEF)로 국내 행동주의 펀드 1세대로 평가받는 강성부 대표가 올 7월에 설립한 회사다. 최근 대한항공의 갑질 논란 등으로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결국 경영참여 선언까지 하게 된 것이다. KCGI의 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인 그레이스 홀딩스라는 자회사를 내세워서 2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다. 대한항공과 진에어, 한진 등 상장사는 물론 정석기업, 칼호텔네트워크 등 그룹 핵심 계열사가 모두 한진칼 지배를 받고 있다. 현재 조 회장을 비롯해 조원태 사장 등 오너 일가가 28.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11월 16일 한진칼 주가는 2만84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전날보다 무려 14.75%나 상승한 수치다. 한진칼에 대한 의결권 확보 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과 주주가치 제고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한진칼 우선주는 전날 대비 상한가를 치며, 종가 1만6350원을 기록했다.
KCGI의 첫 공격 시점은 내년 3월 주주총회가 유력하다. KCGI로서는 주총을 통해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는 기회다.
국민연금(8.35%), 한국투자신탁운용(3.81%), 크레디트스위스(5.03%) 등 주요 주주들 가운데 크레디트스위스는 지난 9월 지분 신고 공시 당시 경영참가 목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연금이나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입장은 사뭇 다르다.
국민연금은 ‘땅콩회항’이나 ‘갑질폭행’ 등 한진그룹 일가의 일탈 행위가 이어지자 주주권을 내세워 대한항공을 압박한 바 있다. 지난 6월 대한항공에 “갑질폭행, 세금포탈 등에 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라”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11월 15일 기준 KCGI(그레이스홀딩스)의 의결권은 9%다. 단순히 비교하면 KCGI는 조 회장 일가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그레이스홀딩스는 대표소송권, 이사의 위법행위 청구권, 주주제안권, 주주총회 소집청구권 등의 권리를 갖게 되었으며, 이로써 한진칼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주주총회를 소집할 수 있으니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 측과 표 대결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의결권(50%)을 확보하기 위해선 조양호 회장측은 21%가 모자라고, 그레이스홀딩스는 41%가 모자란다. 이들에 이어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과 크레딧스위스그룹에 대해 우호지분을 확보하려는 물밑싸움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엘리엇’이라 불리는 KCGI가 어떤 방식으로 조 회장 일가에게 요구를 할지는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KCGI 측은 앞으로 임원선임, 해임, 직무정지, 회사배당, 회사합병, 이사회변경 등에서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한진칼은 내년 3월 17일 이사회가 예정돼 있다. 석태수 대표이사와 윤종호 감사 등 한진칼 등기임원 7명 가운데 4명의 임기가 만료된다. KCGI는 우호 지분 결집을 통해 새로운 이사진 선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대주주 전횡을 막기 위한 ‘3%룰’이 적용되는 감사 선임은 KCGI 뜻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3%룰’은 지분을 3% 초과해 보유한 주요 주주는 감사 선임 과정에서 3%를 초과하는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한진칼 지분 28.9%를 갖고 있는 오너 일가나 지분 10%가량을 확보한 KCGI 모두 감사 선임 과정에서 3%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만 가능하다. 감사가 교체되면 회사 이익에 반하는 경영진 행동을 제지하기가 보다 수월해진다.
KCGI 입장에서는 대한항공에 경영진 관련 문제로 공개서한을 보낸 바 있는 국민연금과 경영에 불만을 품고 있는 소액주주, 여기에 오너일가 이슈로 그룹지배구조가 필요하다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우호 지분 결집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태다.
엘리엇, 현대차그룹에 초과자본금 환원·전략적 검토 실시 요구
지난 11월 14일 엘리엇 계열 펀드의 투자 자문사인 엘리엇 어드바이저 홍콩(Elliott Advisors (HK) Limited)이 현대모비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이하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총칭) 이사진에게 서신을 보냈다.
엘리엇은 “해당 서신을 통해 글로벌 자동차 컨설팅사인 Conway MacKenzie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본구조를 독립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이하 독립 분석보고서)를 현대자동차그룹의 이사진 및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독립 분석보고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심각한 초과자본 상태이며, 현대자동차는 8조원에서 10조원, 현대모비스는 4조원에서 6조원에 달하는 초과자본을 보유하고 있음 △과거 잉여현금흐름의 불투명한 운영으로 인해 상당한 자본이 비영업용 자산에 묶여 있음 △주주환원의 수준이 업계 기준에 지속적으로 미달됨 △현금흐름에 대한 일관되지 못한 보고 방식으로 인하여, 현대자동차그룹의 사업을 통해 발생되는 실제 현금흐름이 왜곡되거나 불투명함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엘리엇은 “본 서신에서 기존 개편안이 철회되고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자동차그룹은 기업구조에 대한 개편을 진전시키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소통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현대자동차그룹 이사회가 △현대자동차그룹 각 계열사 이사회에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하는 것을 포함하여,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하여 엘리엇 및 다른 주주들과 협업할 것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초과자본금을 환원하고, 현저히 저평가된 현재 가치를 고려하여 자사주매입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것 △모든 비핵심 자산에 대한 전략적인 검토를 실시할 것 등을 공개적으로 약속할 것을 요구해왔다.
행동주의 펀드 활동대상은 대기업 지주회사
이번 한진칼·현대차그룹 사태를 계기로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활동대상은 대기업 지주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과 지주회사의 지분을 사들여 적극적으로 주주제안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산주와 현저한 저평가 상태인 지주회사가 대안 투자처로 떠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주주 지분율과 배당 성향이 낮고 자산이 많은 기업도 행동주의펀드의 투자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는 소위 가치주로 불리는 저PBR주가 상당히 많은데, 기업이 보유 자산을 활용한 기업가치 개선에 소극적이거나 낮은 배당성향 등으로 시장이 기업의 본질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한진칼 사례는 개선 여지가 있는 기업으로의 관심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대주주 지분이 40% 이하, 배당성향 15% 이하인 기업 중 보유현금과 자사주, 이익잉역금 비중이 높은 기업으로 네이버, 현대그린푸드, 현대백화점, 한국단자, 광동제약, 조광피혁 등을 꼽았다. 대주주 지분과 무관하게 배당성향이 15% 이하인 기업 중 순현금이 시가총액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으로는 S&T중공업, 동원개발, 현대에이치씨엔, 태광산업, 서희건설 등을 제시했다. |
기사최종편집일:2024-04-30 13:57: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