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중소상공인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부담이 과도하다는 문제의식이 팽배하다. 지난 10여년간 지속되어온 정부의 우대수수료율 적용범위 확대와 우대수수료율 인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오히려 확대되는 듯하다.
최저임금제로 촉발된 갈등이 가맹점 수수료로 옮겨 붙는 양상이다. 정부는 밴(VAN) 수수료율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하는 등 소액결제가 주를 이루는 영세 중소상공인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결제시스템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부의 직간접적 관리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개혁은 비용요인을 포함한 구조적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간편결제시스템, 일명 제로페이는 이러한 측면에서 비현금 결제시장 구조개편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으로 평가된다. 다만, 현재까지의 발표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제로페이 도입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가지 추가적 고려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쉽지 않은 수수료 개혁
신용카드사가 이익을 시현하는 한 영세소상공인을 중심으로 하는 가맹점 수수료 인하 요구는 지속될 것이며, 정부의 수수료 인하 노력 또한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신용카드뿐 아니라 밴사, PG(payment gateway)사 등 다양한 제3자가 참여하는 신용카드 산업의 구조적 특성상 신용카드를 이용한 구매는 할부는 물론이고 일시불 구매를 처리하는 단순 결제에서도 일정한 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신용카드사에 손실을 강제하거나 해당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결국 일정한 수준의 가맹점 수수료 부과는 불가피하다. 사실 가맹점 수수료가 원가 수준으로 인하된다고 해서 수수료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신용카드 산업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정책수단이 정치적 압박을 통해 가맹점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원점에서 신용카드 산업의 구조 자체를 개편하고, 이를 통해 비용의 상당 부분을 절감함으로써 가맹점 수수료를 추가적으로 낮추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할 기득권층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밴사나 PG사를 배제한 신용카드 결제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가맹점 수수료를 추가로 인하랄 여지를 확보하는 것이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실제로 일부 카드사들은 밴수수료 인하를 위해 매입 등 밴사에 대한 위탁업무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하나의 산업을 형성하고 시장에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밴사나 PG사를 배제한 구조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일정 수준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밴사와 밴대리점 등을 배제한 구조로의 개편은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간편결제를 통한 변화의 도모
신용카드 산업의 개편이나 수수료 인하가 교착국면에 빠진 상황에서 제3의 대안으로서 간편결제 수단의 부상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일반적인 간편결제 시스템은 밴사 등 제3의 참여자가 없는 별도의 결제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결제에 소요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절약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신용카드 등 기존의 결제시스템 자체에는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은행이나 핀테크 업체 등 다양한 간편결제 업체들이 자유롭게 결제시장에 참여함으로써 비현금결제시장의 경쟁을 활성화시키고 결제수수료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급결제는 핀테크 중에서도 가장 각광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이다. 핀테크 기반 간편결제의 대표적 성공사례로는 중국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시장 규모는 2017년 말 기준으로 약 6,400억 원에 육박하고 있으며, 알리페이와 텐페이 두 회사의 점유율이 90%를 넘어서고 있다. 위조지폐에 대한 우려, 신용카드 보급의 부진, 온라인 거래에서의 잦은 송금 및 배송사고 등이 모바일 간편결제의 초고속 성장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지목된다. 결제와 관련한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업영역에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사업구조, 그리고 이러한 사업구조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용처와 부가적 혜택을 제공할 수 있었던 점 등도 이들의 성장에 기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몇년간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결제수단들이 빠르게 등장하여 이러한 대안적 간편결제 체제로의 이행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신용카드가 소액결제를 포함한 지급결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눈에 띌만한 진전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온라인 거래에서는 다양한 간편결제 시스템이 편의성이나 할인혜택으로 점유율을 다소 높여가고 있지만 이 또한 신용카드와 연계된 서비스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간편결제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처럼 민간 차원의 간편결제 수단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벤처기업부와 일부 지자체들이 공동으로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칭 제로페이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제로페이는 오픈 플랫폼으로 구축되기 때문에 모든 은행이나 간편결제앱의 사용이 가능하고, 공통QR코드를 활용한다. 정부와 참여기업들의 협약문은 소상공인들에 대한 결제수수료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며, 특히 지자체가 선별하는 정책대상 가맹점에 대해서는 결제수수료, 계좌이체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간편결제시스템을 통한 결제에서도 일정한 비용이 발생하므로 가맹점에 대하여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전술한 중국사례와 같이 간편결제 업체가 다른 분야의 수익을 전제로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제로페이의 경우에는 시스템에 참여하는 은행, 간편결제 플랫폼 등이 공익적 차원에서 제로페이와 연관하여 발생하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자체적으로 부담하겠다는 협약에 참여함으로써 수수료가 없거나 혹은 매우 낮은 거래 모형을 도출해내고 있다. 발표시점에는 주요 시중은행 11개사와 네이버, 비씨카드, 카카오페이, 페이코, 한국스마트카드 등 결제관련 기업들이 협약에 참여했지만 시범사업 단계에서 비씨카드와 카카오페이 등이 불참을 최종 선업한 상태에서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가장 먼저 출범하는 서울페이의 경우 구체적으로 소상공인 가맹점들의 경우 전년도 매출액 8억원 이하는 0%, 8억에서 12억원은 0.3%, 12억원 초과의 경우는 0.5%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로페이 도입 방안에 대한 평가
현재 제시된 제로페이 도입방안만으로 과연 신용카드의 시장지배력을 극복하고 의미 있는 수준의 결제수단 대체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결제수단으로서 신용카드가 누리는 우월한 지위가 유지되는 것은 무엇보다 소비자 입장에서 신용카드 사용에 따른 편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신용카드의 본질적 경쟁력으로 볼 수 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추가적 비용 없이 1개월을 넘어서는 지연결제가 가능하고, 비용이 수반되기는 하지만 할부구매나 리볼빙 서비스를 통해 유연한 결제도 가능하다. 심지어 별도의 비용 없이 무이자 할부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게다가 신용카드사들은 수수료와 연회비, 각종 이자 등을 통해 창출한 수익과 폭넓은 제휴사를 바탕으로 사용자에게 다양한 할인 및 포인트 적립을 포함한 부가혜택을 제공한다는 점도 신용카드의 우월한 지위 유지에 중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로페이가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결제수수료가 아예 없거나 혹은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맹점의 관점에서 장점이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해야 할 유인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결제수수료를 0으로 가져가겠다는 포부 자체에 대해서도 다소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은 결제망에서 밴사나 PG사가 배제됨에 따라 이들과 관련된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고, 따라서 기존 결제수단에 비해 비용이 현저히 낮아질 수는 있다. 그러나 제로페이를 이용한 거래에서도 계좌이체는 필요하고, 누군가는 거래의 무결성을 확인해야 하며, 거래 관련 기록들의 보관과 관리도 요구된다. 여전히 실질적 비용은 0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간편결제사업자, 은행 등 관련 금융회사, 소비자, 혹은 정부 중 누군가는 해당 비용을 감당해야만 한다. 공익적 차원에서 참여 업체들의 자발적인 합의를 통해 가맹점에게 비용을 전가하지는 않지만 사회적 비용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구조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지, 핀테크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에 대해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관련 부처와 지자체들은 공공시설 결제 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방안, 나아가 참여 간편결제 사업자들을 통해 제로페이 사용에 대한 포인트 적립이나 쿠폰 제공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연회비나 수수료 수입이 없는 간편결제 수단에 파격적인 할인, 적립, 기타 부가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관련 부처는 또한 제로페이에 신용카드 기능이 포함된 신제품이 출시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단순 결제서비스와 달리 판매신용은 명백히 비용이 수반되는 금융서비스이기 때문에 수수료도 없고 연회비도 없는 상황에서 무료로 판매신용과 같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제시점과 물건의 양수도시점 간에 시차가 존재하는 온라인 거래의 경우 에스크로 시스템의 운영 등 추가적인 서비스가 필요하고 관련 비용이 발생한다. 거래 사이클의 완성을 위해 필요한 추가적 서비스 관련 비용도 관련 업체들의 자발적 협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존재한다.
제로페이 정착을 위한 정책 지원의 방향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본원적 편익으로만 평가할 때 현재까지 제시도니 유인책만으로는 제로페이로 대표되는 간편결제수단이 신용카드를 대체하거나 적어도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결제수단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지급결제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에서 벌어지는 경쟁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가입자 네트워크를 확보하지 않으면 점유율 경쟁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도 감안되어야 한다. 따라서 영세 중소가맹점 대상의 지급결제 시장에서 제로페이가 대세적 결제수단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유효한 사용자 네트어크의 규모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매우 적극적인 정책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신용카드의 경쟁력은 전술한 본원적 금융서비스 이외에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신용카드 의무 수납제 등 조세정의 차원에서 도입된 정책수단에도 상당 부분 기인한다. 따라서 정책지원 체계를 개편하여 새롭게 도입되는 영세 중소가맹점 대상의 소액 간편결제에 대하여 비대칭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릉 통해 신규 결제수단이 적어도 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사용자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결제시장의 경쟁제고를 통한 가맹점 수수료 하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소득공제 제도에 있어서 파격적 변화가 요구된다. 이미 발표된 도입방안도 제로페이 사용금액에 대해 40%에 달하는 소득공제가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결제수단 사용에 대한 소득공제는 결제수단 사용금액이 소득의 25%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게다가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과세대상의 40% 전후에 달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제로페이 사용을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을 누리기는 녹록하지 않다. 소득이 많을수록 공제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진적 성격도 가진다. 차제에 비현금 결제수단에 부여되는 소득공제 체계의 전면적 개편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한가지 방안은 영세 중소가맹점에서의 제로페이 결제금액에 대한 공제에 있어 소득의 25%라는 최소 사용금액을 없애고, 사용금액 전체에 대하여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액공제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소득이 낮아 세액공제를 통해서는 실질적 혜택을 볼 수 없는 가구들에 대해서는 해당 공제액을 아예 전통시장상품권 등으로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제로페이 사용금액당 세액공제 비율을 적절히 조정하고 세액공제나 상품권 지급 총액에 상한을 부여한다면 기존에 제공되는 조세지원 규모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재정에 추가적 부담이 가지 않는 수준에서 제도설계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맺음말
제로페이와 관련한 여러가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로페이가 기존의 신용카드 네트워크 사용 방식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결제 수수료를 구현해 낼 수 있으리라는 사실 자체는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제로페이 사용자 네트워크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도입 당시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미 신용카드가 주도걱 결제방식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 시장환경에서 제로페이가 소비자들이 애용하는 결제수단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의 광범위한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참여기업들이 공익적 차원에서 손실을 감내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소비자에게 소구할 만한 서비스를 창출해내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현금 결제수단과 관련하여 기 도입되어 있는 정책수단들을 제로페이 도입에 맞추어 재구성하는 것만이 가장 효과적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제도가 산업정책보다는 조세정의 구현에 방점을 두고 도입되었다는 점만 명심한다면 제로페이를 통해 조세정의와 수수료 문제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균형잡힌 제도를 설계해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기대해본다.
|
기사최종편집일:2024-04-26 16:07: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