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
겸업화·대형화를 통해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육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면서 지난 2009년 2월 4일 도입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됐다. 그 사이 국내 자본시장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보였다.
지난 10년간 외형 변화는 실로 괄목할만하다. 시장 변화와 함께 지점 수는 절반으로 줄어든 반면, 인수합병(M&A)을 통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본금 규모는 크게 확대됐다. 2008년 말 기준 61개였던 증권사는 지난해 말 56개로 줄었고, 1800여개였던 지점 수는 작년 말 기준 998개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자본총계는 31조원에서 56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자통법 도입 당시만 해도 2조원 밑에서 맴돌던 증권사의 자기자본이 현재는 5개 증권사가 자기자본 4조원을 넘겨 초대형 투자은행(IB)에 지정됐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증권 규모는 8조원대로 커진 것이다.
내부적으로 보면 사업 모델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0년 전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중심이었던 증권사들의 수익모델은 최근 자산관리(WM)와 IB까지 확대되면서 현격히 변화했다.
금융투자사에게 기업 신용공여, 프라임 브로커리지서비스(PBS) 등 새로운 영역이 생겨났고, 초대형 IB 두 곳에는 발행어음을 통한 자본조달까지 허용되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이같은 겸업화 덕에 다양한 신사업 진출이 가능해진 증권사는 브로커리지 의존도를 낮추고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IB) 비중을 키웠다. 천편일률적이었던 수익구조를 다각화한 것이다.
자본시장 규모도 커졌다. 자통법 도입 전 국내 주식과 채권시장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10% 수준에 불과해 경제규모에 비해 자본시장 규모나 발전도가 지극히 낮았지만 지난해말 기준 주식과 채권시장 규모는 실질 GDP의 두배를 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하지만 자통법 시행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어깨를 견줄만한 투자은행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자본규모가 커졌음에도 자기자본 규모가 100조원을 넘는 골드만삭스에 비하면 국내 증권사의 자본규모는 아직도 초라하다. 국내 기업의 해외 채권발행이나 대형 인수합병(M&A) 주관 등에서 국내 증권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며, 몇몇 동남아 국가를 제외하고는 해외 진출도 미미한 실정이다.
지난 10년 간 외형 성장과 수익구조의 변화를 이룬 자본시장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규제의 벽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최대 걸림돌로 꼽고 있다. 애초 ‘안 되는 것만 빼놓고 다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지향했지만 여전히 ‘허용하는 업무만 가능한’ 포지티브 규제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규정 중심 규제가 불러온 대표적인 폐해가 공모펀드의 몰락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사모펀드(PEF)의 약진, 공모펀드의 쇠퇴’ 흐름은 점점 거세지고 있는데, 강력한 규제 환경에서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비판이다.
이 관계자는 “공모펀드의 운영절차는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하에 엄청나게 복잡하다”면서 “까다로운 인허가부터 복잡한 판매절차와 사후관리, 민원노출 위험 등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에 공급자들이 손을 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모펀드의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현 규제 환경이 공급자가 공모펀드를 운영할 만한 유인동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모펀드의 순자산은 2016년 사모펀드에 역전당한 이후 매년 격차가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은행 위주의 금융산업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2년 전 금융투자업계가 법인 대상 지급결제 업무나 외국환 업무 등 증권사에는 허용되지 않은 업무를 두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은행업계와 기싸움을 벌인 것도 이같은 구조에 대한 금융투자업계의 불만이 투영된 것이다.
자본시장 정책과 관련해 증권사들은 공통적으로 증시 활성화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시장을 더욱 활성화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으며, 각론은 있으나 종합적인 방향이 없다고 꼬집었다.
지지부진한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정책도 불만으로 꼽혔다. 대형사는 사업승인 지연을, 중소형사는 대형사 위주의 사업인가를 각각 지적했다. 초대형IB 핵심사업인 발행어음업 인가를 받은 곳은 아직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2곳에 그친다. 초대형IB 자격요건인 자기자본 4조원 이상에 미달한 중소형사 대부분은 대형사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중소형사 진입장벽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 산업을 키우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자본시장 혁신과제나 증권거래세 인하 추진 등 자본시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을 높게 평가한 증권사는 정책의 일관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일관성 없고 구체적이지 않던 경제 및 자본시장 정책을 현실성 있게 바꾸고 체계화했다”며 “경제구조 개혁 지연으로 인해 예상된 급격한 경기둔화를 막고 달러 강세와 이에 따른 신흥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고 덧붙였다. |
기사최종편집일:2024-05-03 09: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