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자체적인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 발행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급결제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은행을 포함한 전세계 상당수의 중앙은행들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한 논의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해 11월 ‘싱가포르 핀테크 페스티벌(Singapore FinTech Festival)’에 참석해 “디지털 경제에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캐나다, 중국, 스웨덴, 우루과이 등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이미 디지털 통화의 발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새로이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수용하고 있다. BIS(국제결제은행)도 디지털화폐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중앙은행들이 CBDC 발행을 검토하고 연구하는 배경에는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의 도래가 있다. 현금 사용이 줄어들고, 페이팔·애플페이·위쳇페이와 알리페이 등 전자결제시스템은 전통적인 은행의 영역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혁신에 대한 대비, 지불결제 수단의 대안 및 국민들의 금융서비스 접근 향상 등을 목적으로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결과 각국의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한 입장은 자국 상황에 따라 상이하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빠른 시간 안에 도입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지만 대체 지불수단의 등장 가능성 및 기술발전이 가져올 금융서비스의 변화 등에 금융업계의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각국의 입장’ 보고서를 중심으로 디지털화폐 발행에 대한 진행상황을 점검해본다.
한국은행 포함한 상당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한 연구 진행
지급결제 관련 기술 발전 및 민간 가상화폐 시장의 급성장 등으로 2016년 이후 한국은행을 포함한 전세계 상당수의 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발행에 관한 논의 및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란 기존 중앙은행내 지준예치금이나 결제성 예금과는 별도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새로운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의미한다. CBDC는 중앙은행의 직접적인 채무로 현금 등 법화와 일대일 교환이 보장되는 점에서 내재가치를 규정하기 어려운 민간 암호자산과는 구분된다.
기존 지준예치금(reserves) 계좌 및 은행 예금과 같이 단일원장방식(account-based, 현행 계좌방식) 또는 암호자산과 같이 분산원장방식(token-based)에 기반해 전자적 형태로 발행된다. 이용목적에 따라 모든 경제주체가 이용할 수 있는 소액결제용(general-purpose) CBDC와 은행 등 금융기관들만 이용할 수 있는 거액결제용(wholesale only) CBDC 발행으로 나눠진다.
지급결제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CBDC 발행 논의가 대두되었고 전세계 중앙은행의 70%가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다. 분산원장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지급결제시스템의 효율성 및 안전성 제고를 위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물화폐에 기반한 기존 법률과 제도를 CBDC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관련 법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핀테크 등 기술 혁신에 관심이 높은 싱가포르와 캐나다 등은 미래 지급결제 시스템 변화에 대비하여 정부와 민간 금융사, 핀테크 기업이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CBDC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16년 3월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급결제 기술 발전의 이해 및 궁극적으로 미래의 지급결제 시스템 변화에 대비하여 전세계 최초로 민간 기술업체, 금융기관과 함께 분산원장 기술에 기반을 둔 지급결제 시스템 프로젝트인 Jasper를 진행했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중앙은행의 도매형 디지털토큰 CADcoin을 통해 분산원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총액결제 시스템을 구축(2016년 3월~6월)하였으며 이후 이 플랫폼을 확장시킨 2단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11월 싱가포르 금융청(MAS)은 혁신 기술의 안전한 도입을 위해 캐나다 Jasper 프로젝트와 유사한 지급 및 청산결제 시스템에 분산원장 기술을 적용하는 Ubin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MAS는 주요 금융기관6) 및 블록체인 기술업체와 함께 중앙은행 디지털토큰을 이용한 은행간 지급결제 시스템 구축 테스트를 완료했다.(2016년 11월~2017년 3월)
이후 싱가포르 은행연합회와 함께 유동성계좌의 지급결제 및 청산을 위한 소프트웨어 프로토타입 개발을 완료했다.(2017년 10월) 프로젝트를 통해 CBDC가 현존하는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및 잠재적 가치 등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향후 현재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CBDC 발전이 궁극적 목표다.
스웨덴 등에서는 현금을 대체할 지급수단의 대안 중 하나로 CBDC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국민들의 금융서비스 접근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CBDC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2016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현금이용 비중 하락 및 지급결제 기술발전 등을 배경으로 CBDC 발행을 염두하고 e-krona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스웨덴은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사회적 비용이 높은 현금이용의 감축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현금이용 비중이 2014년 80%를 상회한 수준에서 2018년 60%로 급감했다. 현금의 대체 수단으로 CBDC 발행 검토에 착수한 스웨덴 중앙은행은 최근 e-krona 발행을 위한 기술 솔루션 구축 관련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국가 지급결제에서 현금이용 비중이 20%에 불과하자 현금 대체 수단의 일환으로 CBDC인 e-kroner를 연구하고 있다. 2015년 덴마크는 자국의 화폐생산을 중단했으며 최소의 필요량에 대해서는 위탁 생산 방식을 택했다.
이외에도 북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인구감소와 현금사용의 대안 중 하나로 CBDC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및 스페인은 일정 금액(1,000유로 및 2,500유로) 이상의 거래에서는 현금결제를 금지했다. 네덜란드는 직불카드(pin-only)가 현금 결제를 대체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지급결제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우루과이와 튀니지 등은 금융서비스 접근성 확대를 위해 디지털 지갑 서비스 형태로 CBDC를 발행해 테스트 중이다.
CBDC 관련 연구 결과 대부분의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현재의 상황에서 도입의 장점보다는 잠재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여 당분간 CBDC 발행 계획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 연준과 일본 중앙은행은 CBDC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발행 계획이 없음을 일축했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 자국 통화의 위상 등을 통한 국제금융중심 지위 유지를 선호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CBDC 연구를 통해 CBDC의 통화정책 개선 가능성 등에 의문을 가지며 현 시점에서 발행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2017.10월 및 2018.4월) 미 연준은 CBDC 발행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또한 미국은 지불수단으로서 현금의 비중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도시(워싱턴 DC 등)는 식당 및 소매점에서 현금을 받지 않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등 현금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
이외에도 ECB,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중앙은행, 덴마크 중앙은행 및 한국은행 등은 CBDC의 금융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 등 잠재 위험을 고려하여 발행 계획이 없음을 밝혔다. 2015년 CBDC의 발행 가능성을 제기한 BIS는 관련 연구를 통해 각국 중앙은행들에게 금융안정성 측면에서의 주의를 당부했다.
2018년 CBDC의 명확한 개념 및 발행에 따른 통화정책, 금융안정, 지급결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포함한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2019년 1월 바젤은행감독위원회는 CBDC 성장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각종 위험 초래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2019년 3월 BIS 사무총장은 CBDC가 도입될 경우 기존 상업은행이 담당하던 업무(예금, 대출 등)가 중앙은행으로 일원화될 가능성 및 이에 따른 잠재적 위험을 경고했다.
반면 일부는 기술혁신을 통한 결제수단의 변화 등에 주목하며 CBDC 관련 연구를 확장 중에 있다.
영란은행은 브렉시트로 인한 현 국제금융중심 지위 변화를 도모하는 입장에서 CBDC 연구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5년 이후 CBDC 발행을 중요한 연구 과제로 선정하여 민간 컨소시엄과 함께 CBDC 발행 가능성 등 관련 연구를 비공식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8년 11월 캐나다 중앙은행 및 MAS와 함께 디지털화폐를 이용한 국경간 외화거래 지급 및 결제에 관한 연구에 착수했다.
앞서 소개한 싱가포르와 캐나다는 관련 프로젝트 범위를 단계별로 확장해 테스트 중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디지털화폐 연구소를 설립해 CBDC 관련 기술적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수년간 CBDC 관련 연구를 진행한 IMF는 최근 논의의 중심을 지급결제 수단의 변화에 집중하고 중앙은행이 이를 주도적으로 관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 접근성, 안정, 결제 투명성 제고 등에 도움 등 장점과 동시에 금융안정성 저해 위험을 주시해야 함을 강조했다.
CBDC의 실제 도입에 관해서는 현재로선 불분명하나 대체 지불수단의 등장 가능성 및 블록체인 등 기술 발전이 가져올 금융서비스의 변화에 미래지향적인 대비가 필요해 보인다.
정부 주도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던 싱가포르는 블록체인 기술 발전 및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는 CBDC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Ubin 프로젝트를 통해 CBDC 뿐만 아니라 2018년 11월 싱가포르 거래소를 중심으로 블록체인을 이용한 디지털 증권토큰을 거래할 수 있는 증권동시결제시스템(DvP) 플랫폼 도입 테스트를 완료했다. EU는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지원과 법제도 등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향후 지급결제시스템에 참가하는 은행, 금융투자회사 등 관련 금융기관들은 환경 변화에 대비한 관련 연구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 및 캐나다에서는 중앙은행과 함께 상업은행 및 관련 기술업체들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은행들은 USC(Utility Settlement Coin) 컨소시엄을 구성해 회원 은행이 각국 중앙은행에 예치한 지급준비금을 담보로 디지털화폐를 발행하고 이를 이용한 은행간 결제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SETL 등 블록체인 관련 기술업체들도 각국 중앙은행과 디지털화폐 발행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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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2024-04-19 10:3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