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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무시 ‘멋대로 투자’…‘무역금융펀드 사기’도 은폐
등록일 [ 2020년05월06일 10시01분 ]


투자 손실만 1조6700억원에 달하는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 사태를 수사 중인 검찰이 최근 연이어 주범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 수사는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6월 사건을 이첩하면서 시작됐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라임과 ‘아바타’ 운용사인 포트코리아자산운용·라움자산운용과 펀드 판매사인 신한금융투자·KB증권을 조사했다. 금감원은 지난 2월 중간 조사 결과 라임이 비정상적인 펀드 구조를 설계·운용해 자본시장법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중간 조사 결과 라임은 특정 펀드의 손실을 막기 위해 타 펀드 자금으로 부실 자산을 인수하는 행위를 수차례 반복하며 ‘돌려막기’를 했다. 일부 임직원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라임 임직원 전용 펀드 등으로 거액의 부당 이득을 취득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라임과 신한금투는 펀드 판매 과정에서 모펀드인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1호)가 ‘폰지 사기’(다단계 투기금융)에 연루된 사실을 숨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펀드가 정상 운용 중인 것처럼 속여 계속 판매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는다.

피해자 수십여명은 검찰 고소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라임을 포함해 신한금투, 대신증권, 우리은행, KB증권, 한국증권금융 등 판매·수탁사를 특경법·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검찰에 잇따라 고소했다.

1월 서울남부지검에 사건을 배당한 검찰은 2월부터 강제 수사에 돌입했다. 라임과 신한금투, 우리은행, 대신증권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펀드 투자사인 에스모와 에스모 머티리얼즈, 디에이테크놀로지도 압수수색했다. 1조원 규모 판매로 자금 유치에 핵심 역할을 했던 장모 전 대신증권 센터장 자택, 김 전 회장이 실소유주인 회사 스타모빌리티 등도 압수수색 대상이었다. 관리·감독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살피기 위해 금감원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임모 전 신한금투 본부장을 중심으로 관련자 8명을 구속하며 신병을 확보했다.


라임의 실체는 ‘금융자본의 야바위꾼’

라임자산운용(라임)은 2012년 투자자문사로 시작해 2015년 자산운용사로 변신했다. 2017년 신한금융투자와 손을 잡고 무역금융펀드를 내놓으면서 규모를 키웠다. 투자자들이 모이면서 2019년에는 6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국내 1위 헤지펀드 운용사가 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라임이 내놓는 펀드는 ‘없어서 못 사는’ 고수익 투자상품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라임은 1조6700억원 규모의 펀드를 돌연 환매 중단했다.

금융감독원 조사를 통해 드러난 라임의 실체는 ‘금융자본의 야바위꾼’이었다. 라임은 사모펀드를 돌려막으면서 투자자들에게는 수익률을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사모펀드는 어디에 얼마를 투자하는지 공개할 필요가 없고 금융당국 규제도 적다. 현재 잠적한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은 이를 악용했다. 한 펀드에서 손실이 나면 다른 펀드 자금을 가져와 ‘돌려막기’를 했다. 환매 중단된 모펀드는 4개다. 이 모펀드에 딸린 자펀드가 173개나 된다. 자펀드가 투자금을 모으면 모펀드에 투자금을 주는 구조였다. 라임은 점차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려워지자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들에 투자하면서 투자자들에게는 언제든지 환매가 가능하다고 속였다.

미국 인터내셔널인베스트먼트그룹(IIG)이 운용하는 무역금융펀드에 투자를 하면서 더욱 꼬였다. 라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라임과 신한금융투자는 2018년 6월 이미 무역금융펀드의 부실을 알고 있었다. 두 회사는 무역금융펀드가 투자했던 상품이 ‘폰지 사기’에 휘말리자 부실이 드러날 것을 걱정했고 지난해 4월 계약을 변경해 문제를 은폐했다. 폰지 사기는 선(先)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대신 후발 투자자의 투자금을 앞선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돌려막기식 사기다. 두 회사는 그해 11월엔 IIG 펀드로부터 ‘부실로 청산 절차가 시작됐다’는 e메일을 받고도 500억원 규모의 환매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라임운용의 다른 펀드 자금으로 무역금융펀드 부실을 돌려막았다. IIG는 결국 증권사기 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등록 취소 처분을 받았다. 라임은 6000억원대 무역금융펀드의 약 40%를 IIG의 헤지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주장하는 금융회사들도 ‘공범’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만들지만 투자자를 찾아 판매하는 곳은 은행이나 증권사다. 라임 사태에 유명 금융사가 깊게 개입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대신증권 반포WM센터에서만 2천억원이 넘는 라임 펀드가 팔렸다. 책임자 장모 센터장과 이 전 부사장은 과거 대신증권에서 함께 일한 선후배 사이다. 장 센터장은 펀드 부실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이를 숨기면서 환매(펀드에서 돈을 빼는 것)를 막았다. 일부 작전주를 알려주고 고수익이 날 것이라고 장담하며 ‘장밋빛 전망’을 내세우기도 했다.

다른 증권사인 신한금융투자 임모 전 PBS본부장은 이미 검찰에 구속 돼 수사를 받고 있다. 임 전 본부장은 투자자들에게 펀드 투자 방식을 속여 수백억원을 빼돌리고, 라임 투자를 받은 회사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임 본부장의 부하 직원인 심모 전 신한금투 PB는 이 전 부사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심씨는 현재 이 전 부사장과 함께 잠적 중이다.

증권사·은행 등 판매사들은 자신들도 라임에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은 손해보지 않았다. 라임과 TRS 거래를 한 KB증권(376억원), 신한금투(220억원) 등 증권사는 645억원의 수익을 얻었다. 은행 중에서 라임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우리은행은 수익으로 88억원을 거뒀다. 하나은행(47억원), 신한은행(46억)이 뒤를 이었다.

원금을 얼마나 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삼일회계법인의 지난 2월 실사 결과 ‘플루토 FI D-1호’는 장부가액 1조2337억원 중 6222억~8414억원을, ‘테티스 2호’는 2931억원 중 1692억~2301억원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무역금융펀드는 전액 손실이 예상된다. 여기에 라임이 증권사와 TRS 거래를 체결하면서 증권사가 회수금을 먼저 받을 우선권을 쥐고 있다. 소규모 투자자들은 한 푼도 못 건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 책임론도

이들의 ‘사기행각’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비판도 있다. 금융시장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금감원이 제 기능을 다 했다면 라임의 대담한 사기 행각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라임의 불법 펀드 운용 실태 검사를 시작했다. 그해 10월 초 라임 중간조사 결과를 마무리하고도 올해 2월에서야 결과를 공개했다. 라임 사태의 ‘뒷배’에 금감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김경율 회계사(경제민주주의 21 공동대표)는 “금감원도 지난해 6월쯤 라임 펀드의 자금 흐름이 이상하다는 점을 파악했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데도 당국에서 자금 동결 등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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