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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성장·금리 삼중 딜레마…가계·기업·국가부채 등도 지속 증가
등록일 [ 2023년10월30일 18시41분 ]

한국 경제가 ‘트릴레마(trilemma·삼중 딜레마)’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것도 고려해야 하고 세계 경제의 주요국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유지해가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트릴레마(trilemma)라는 말은 원래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서는 일반적으로 삼중고(三重苦)라는 뜻으로 물가안정(Price Stability) 경기부양(Economic Stimulus, pump-priming) 국제수지(Balance of Payments) 개선 등의 세 가지를 가리키는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즉, 물가안정에 치중하면 경기가 침체되고, 경기를 부양하려 하면 인플레이션의 유발(물가 불안정)과 국제수지 악화가 초래될 위험성이 있는 등 서로 물고 물려서 정책선택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물가와 성장, 금융 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한 셈법을 놓고 길을 잃은 형국이다. 고금리·고물가 속에서 경기 회복세가 둔화해 저성장이 굳어지는 조짐이 분명해지지만, 가계부채 증가세와 역대 최대로 벌어진 한·미 금리 차(최대 2%포인트)는 불안 요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경기부양 정책을 쓰기엔 물가과 금융 불안이 걱정이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이런 삼중고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커졌다.

한국 경제의 목표 중 핵심은 물가안정이다. 주요 선진국보다 인플레이션을 비교적 빠르게 잡았고 현재도 물가가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최근 국제유가가 발목을 잡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대비 4.4% 상승했으며, 신선식품지수는 6.4%나 상승했다. 9월 생산자물가지수도 121.67(2015년 100기준)으로 전월대비 0.4% 올랐다. 유가 오름세에 석유제품과 화학제품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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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바로 긴축모드로 들어갔다간 자칫 내수 회복 동력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과 한국은행의 고민은 크다. 

하지만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치기엔 금융 안정 리스크가 걸림돌이다. 한은은 9월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금융시스템은 대체로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했지만 주요국 긴축기조 지속, 국내외 부동산시장 불확실성 등 대내외 리스크 요인이 있는 상황에서 금융불균형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단기 금융불안 수준을 평가하는 금융불안지수(FSI)는 크게 하락하면서 위기단계를 벗어났으나 대외부문의 영향으로 소폭 상승했다”며 “중장기적인 금융불균형 정도 등을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장기평균에 근접해 가다가 최근 민간신용 증가세, 자산가격 오름세 등의 영향으로 상승했다”고 언급했다.

이런 가운데, 올 3분기 성장률이 0.6%로 세 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한은 전망치인 ‘1.4%’ 달성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분기별 GDP 성장률은 코로나19 발생과 함께 2020년 1분기(-1.3%)와 2분기(-3.0%)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러다가 같은 해 3분기 2.3% 성장률을 기록한 이후부터 4분기(1.3%), 2021년 1분기(1.8%)·2분기(0.9%)·3분기(0.1%)·4분기(1.4%), 지난해 1분기(0.7%)·2분기(0.8%)·3분기(0.2%)까지 9개 분기 연속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다만 지난해 4분기 들어서는 수출이 급감하면서 다시 –0.3%가량 쪼그라들었다. 올해 들어 계속 역성장은 피하고 있지만 연간 1.4%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은은 앞서 2분기 성장률 잠정치 발표 당시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이 각 0.7% 정도 돼야 올해 1.4% 성장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고금리 기조 장기화로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이자지출도 계속 증가하면서 소득 대비 이자 부담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가계부채는 1,862조 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68조6,000억원이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분기 말 124.1%로 1분기(123.0%)보다 1.1%p 증가했다. 기업부채 비율은 2017년 4분기(92.5%) 이후 5년 넘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 3일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108.1%를 기록했다. 2017년(92.0%)보다 16.2%p 늘었는데 이는 민간 부채(가계·기업) 데이터가 집계되는 26개국 중 가장 큰 수준이다.

이자로 지출하는 비용도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분기 가계 이자 지출 금액은 월평균 13만1000원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많았다. 이자 비용 부담이 상당히 커졌다는 의미다.

월평균 소득(479만3000원)에서 이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2.7%로 전 분기 통틀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가구 중 이자를 내는 가구는 39.9%로 10가구 중 4가구꼴이다. 평균 통계다 보니 가계당 실제 월 이자 부담은 이보다 훨씬 클 수 있다.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한 원인을 보면 표면적으론 기준금리 인상을 들 수 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2021년 8월 0.75%에서 현재 3.5%까지 올렸다. 다만 전문가는 이면에 코로나19 시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사는 ‘영끌족’이 늘어났던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가계의 이자 비용이 늘어나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소비자들의 경제 인식과 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심리가 석달 연속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2023년 10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심리지수(CCSI)는 98.1을 기록해 전월대비 1.6포인트 내렸다. 직전 최저치는 올해 5월 기록한 98.0이다. 소비심리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장기 평균보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시각이,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고 해석된다.

황희진 한은 경제통계국 통계조사팀장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시중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금리 인상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에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최근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국채 발행을 통한 연방정부의 시급한 재원 조달도 더욱 어렵게 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력한 양적 긴축(QT)이 주목을 받고 있다.

양적 긴축이란 연준이 보유 채권을 매각해 시장의 달러화를 흡수하는 정책으로, 채권을 사들이면서 시중에 달러를 대규모로 공급하는 양적 완화(QE)의 반대 개념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5일(현지시간) 채권시장의 악순환 리스크가 연준의 양적 긴축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준은 연간 7,200억 달러(975조원)의 속도로 국채 포트폴리오를 축소할 정도로 40여 년 만에 가장 강력한 국채 매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거의 2조 달러(2,700조원) 상당의 연방 재정적자를 메우려는 재무부의 노력도 더욱 어렵게 하는 실정이다.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인사들은 장기 국채금리 급등에 따라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 가능성이 줄 수 있다고 했지만, 양적 긴축에 관해서는 그러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금리 인하 시작 후에도 현재의 과정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주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2007년 이후 처음으로 5%를 넘고, 또한 1982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연준으로서는 기존 방침의 재고 압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차입 비용의 급증은 경제의 경착륙을 초래하고, 덩달아 주식과 기업 신용과 같은 더 위험한 자산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연준의 양적 긴축은 이전에 시행됐을 때는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일찍 종료됐으며, 일부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에도 같은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브랜디와인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관리자인 잭 매킨타이어는 “필요하다면, 또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계속 메시지를 보낸다면, 그들은 매우 빠르게 바뀔 수 있다”라며 연준의 입장 변화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같은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와 달리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속으로 동결했지만 시장금리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를 넘어서면서 연내 ‘연 8%’ 진입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연 6%에서 연 7%대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기간이 불과 두 달여 남짓이라는 점에서, 빠르면 오는 12월 중에는 8%대 진입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은행채, 코픽스(COFIX) 등 지표금리의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은행 또한 연내 긴축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50년 만기 주담대, 부동산 규제 완화 등으로 급증한 대출 잔액을 고려하면 상당수 신규 차주의 이자 부담 또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주담대 금리의 오름세는 당장 상당수 차주들의 이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지표금리의 흐름을 그대로 적용받는 변동금리 차주들은 당장 불어나는 이자의 상환마저 버거운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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