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 경쟁력 지표에 대한 문제제기
금융업 경쟁력이란 용어는 일차적으로 개별 금융회사의 성장성과 수익성 등 일반적인 기업의 경쟁력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실물경제의 혈맥 역할을 하는 금융업 금융중개기능의 특성 상 금융업 전체가 국민경제의 원활한 운영에 기여하는 정도 또한 금융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매년 발간되는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경쟁력 보고서 중 금융 관련 지표이다. 올해의 경우 금융시장 경쟁력을 측정하는 금융시장 성숙도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가나(52위)나 캄보디아(65위)보다도 낮은 81위로 평가되면서 국내 금융업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평가 지표는 대출의 용이성, 벤처자본의 이용가능성, 은행건전성, 금융서비스 이용가능성, 금융서비스 가격 적정성, 국내주식시장을 통한 자본조달, 증권거래 관련 규제, 법적 권리지수 등 8개로 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금융업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각국별로 100명 이하의 서베이 대상자가 정성적인 설문에 대해 1~7점 척도로 응답한 결과를 다른 나라와 상대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우리 금융업의 경쟁력을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세계경제포럼 평가의 경우, 지표항목 자체는 금융업 경쟁력이라는 개념에 어느 정도 부합하지만 그 측정방법은 신뢰할만 하지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좀 더 객관적인 통계수치에 의해 개별 금융회사의 생산성과 동시에 금융업의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측정하고자 하는 지표가 금융업 부가가치 비중이다. 이 지표의 측정결과에 대해서는 국내 금융업 부가가치의 비중이 2005년 6.9%대에 도달한 이후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금융업의 경쟁력 저하를 보여주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2012년 기준 일본(5.7%), 프랑스(4.8%), 독일(4.0%), 이탈리아(5.4%) 등 몇몇 선진국의 GDP 대비 금융업 부가가치 비중이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낮고 OECD 평균도 6.5% 수준에 불과해 국내 금융업 부가가치 수준이 낮은 경쟁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금융업 부가가치의 높고 낮음을 따지기 전에 먼저 금융업 부가가치가 진정한 의미의 금융업 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금융업 부가가치가 높다는 사실이 개별 금융회사 차원에서나 금융업의 경제 내에서의 역할 차원에서 ‘경쟁력’이 높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금융업 부가가치의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융업 부가가치의 개념
금융업의 부가가치는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산출액에서 중간투입액을 차감하여 계산하는데 먼저 금융업 특유의 산출액과 중간투입액 개념이 적용된다.
금융업의 산출액은 실제서비스와 금융중개서비스로 구분하여 계산된다. 실제서비스 관련 산출액은 수입수수료, 보증료, 신탁보수 등으로 구성된다. 금융중개서비스는 대출금융중개서비스와 예금금융중개서비스로 나누어지는데 대출금융중개서비스의 산출액은 수입이자 등 수입재산소득에서 대출잔액에 기준이자율을 곱한 금액을 차감하여 계산하고, 예금금융중개서비스는 예금잔액에 기준이자율을 곱한 금액에서 지급이자 등 지급재산소득을 차감하여 계산한다. 금융중개서비스의 부가가치 계산 방법이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명시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금융회사의 대출 및 예금 비즈니스 각각으로부터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측정하고자 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편, 금융업의 중간투입액에는 여비교통비, 소모품비, 도서인쇄비, 수선유지비, 차량비, 임차료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금융업의 총산출에서 중간투입을 차감한 부가가치는 피용자보수, 고정자본소모, 순기타생산세와 영업잉여로 구성되는데, 2011년 국내 통계를 보면 영업잉여(50.9%)와 피용자보수(35.6%)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은행이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임직원에게 높은 급여와 보너스를 지급하면 금융업 부가가치는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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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 부가가치에 내재된 리스크 환상(Risk Illusion)
문제는 금융업이 경제 내에서 차지하는 특수한 위치와 리스크부담 행위를 수익의 원천으로 하는 업의 특성으로 인해 금융업의 부가가치가 커지는 것이 항상 경제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 영국 금융업의 사례는 금융업 부가가치 개념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리만브라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금융업의 무분별한 리스크부담 행위에 기인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2008년 4분기 글로벌 주요은행의 주가는 평균 50%이상 하락하였으며, 금융중개기능의 마비에 따라 전세계 GDP는 연6% 이상 하락하고 국제무역은 연 25% 축소되었다. 하지만 국민계정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이 시기 영국 금융부문의 명목총부가가치(Nomial Gross Value-Added: GVA)는 사상 최대의 속도로 증가하여 영국총생산의 9%를 차지하였으며, 금융회사들의 총영업이익은 200억파운드로 사상 최대의 분기 실적을 기록하였다.
금융업이 경제 전체에 최대의 해악을 끼치고 있을 때 금융업 경쟁력의 척도로 활용되는 부가가치가 최대의 실적을 기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해답은 국민계정에서 사용되는 금융업 부가가치의 개념과 금융업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회계적 손익의 계산 관행에 있다.
앞서 기술했던 금융중개서비스의 부가가치 계산 방법에 따르면, 대출과 예금 비즈니스 각각의 부가가치 계산에 공통적으로 ‘기준금리’가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이 기준금리로 리스크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무위험 이자율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금융위기 시기 높아진 대출 리스크를 반영한 고금리대출이 늘어나게 되면 통계상 금융업의 산출액과 부가가치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개별 금융회사의 손익측정 측면에서 보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높게 부과한 대출금리만이 수익에 반영되고 위기 시 대출에 내재된 높은 리스크는 회계적 손익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급증하게 된다. 즉 금융위기 시기 금융업 부가가치 및 영업이익 증가의 상당 부분은 리스크 환상(Risk Illusion)에 기인한다.
금융업의 진정한 경쟁력 평가를 위한 제언
금융업도 하나의 산업이라는 점에서 부가가치 개념은 금융업의 생산성을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현재 국민계정 통계의 부가가치 개념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리스크부담 행위를 업의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금융업의 경우 ‘리스크환상’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경쟁력 지표로서 활용해야 한다. 또한 금융업의 금융중개활동을 통한 타 산업에 대한 생산지원 효과를 측정하는 중간수요율(중간수요액/총수요액) 통계에도 더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금융업 중간수요율은 2011년 기준 약 62% 수준으로 산업평균 약 54%보다는 높으나 최근 정체상태에 있다. 이는 최종수요로 통계에 반영되는 가계대출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기업대출이 감소하여 금융업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가 정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국민계정과는 별도로 금융업 부가가치 측정 시 리스크를 반영하는 대안을 개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리스크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지표를 활용할 경우 국민경제에 대한 금융업의 기여도나 개별 금융회사의 실질적인 수익성과 성장성을 측정할 수 없어 진정한 의미의 금융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사결정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BIS 등에서도 금융업의 리스크 환상 문제를 인식하고 조정된 부가가치를 계산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만기나 신용리스크를 반영하여 기준금리를 조정하는 방안도 그 중 하나인데, 2003~2007년 중 유로지역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조정 금융중개서비스 측정치는 현재의 국민계정 기준 금융중개서비스 측정치의 60% 수준에 불과하였다고 한다.5)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리스크를 반영한 성과평가지표(Risk Adjusted Performance Measurement)의 경영의사결정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국내 금융업의 경쟁력 강화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필자 또한 개별 금융회사와 정책당국의 해법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산적인 논의의 출발점은 논의에 사용되는 개념들의 유용성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기사최종편집일:2024-05-03 09: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