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일대박론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통일이 되면 시장 확대, 자원 및 우수하고 저렴한 인력자원의 확보 등에 따라 고성장을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30년 정도 후면 1인당 GDP 기준 세계 최상위 부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국내 은행들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본격적으로 통일금융 관련 사업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상품개발 노력만으로는 통일금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통일금융은 정치적인 통일의 가시화 여부와는 별개로 북한의 사회주의 금융시스템이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을 반영한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내 은행들이 주요 플레이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단, 이 과정에서 금융･경제의 혼란, 해외 은행들의 시장 선점 등 통제하기 어려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 기초 체력이 약한 은행들은 오히려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은행으로서의 기본적인 경쟁역량을 바탕으로 북한경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중국, EU 국가 등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해외 은행들과의 협력관계 구축 등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은행들만이 통일금융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금융에 대한 희망과 현실
최근 통일대박론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정부 통일준비위원회에서 발표된 추정에 의하면 남북의 경제통합 또는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시장 확대 및 통합의 효과, 자원 이용의 효율성 증가와 사회갈등 비용 경감, 군 병력 감축 효과 등에 따라 2015~2050년간 한국
의 연평균 성장률은 0.735~0.806%p 상승하고 2050년이 되면 1인당 GDP는 7만 달러가 넘어 G20 회원국 가운에 미국에 이은 2위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희망 섞인 전망은 정치사회적인 측면에서나 경제력 측면에서 차이가 큰 두 체제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어떤 식으로든 최소화할 수 있거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긍정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한보다 경제력 격차가 훨씬 작았던 독일의 경우에도 화폐의 1:1 통합 등 급격한 경제통합의 후유증으로 동독지역 물가상승률이 20%를 상회하고 실업률은 15%에 달하였으며, 서독지역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도 급등하는 등의 부작용이 10여 년간 지속되었다는 점과 현재까지도 동서독 지역 간 경제격차가 크다는 점을 볼 때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만을 받아들이는 데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내 은행들도 통일 관련 TFT를 구성하고 상품개발 및 북한지역진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는 중국 은행들과의 제휴 등을 추진하면서 ‘통일금융’과 관련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은행들은 특히 통일이 된다면 북한지역의 인프라 개발 등과 관련된 새로운 금융수요가 늘어나고 새로운 자본주의형 기업들이 확산됨에 따라 새로운 수익원과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통일이 가시화된다고 해서 곧바로 은행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갑작스러운 통일에 따라 금융시스템이 단기간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통제 불가능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어,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금융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성이 심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희망대로 금융시스템이 원활하게 통합되어 국내 은행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확보되는 상황을 전제로 상품개발 등 단편적인 통일금융 대응책만을 마련할 경우, 통일에 따른 북한의 금융시스템 변화는 국내 은행들에게 기회가 아니라 오히려 위기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일금융은 북한 금융시스템의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으로의 이행 및 남북 금융시스템의 통합과정의 기회요인과 리스크요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할 때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시스템 이행 및 통합 과정의 이슈
통일금융에 대한 전망들은 북한의 금융시스템이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으로 이행하고 궁극적으로는 남북한의 금융시스템이 통합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통일금융과 관련된 기회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 금융시스템의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으로의 이행 내용과 그 과정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에 근간을 두고 있는 북한에서 금융이란 ‘국가은행을 중심으로 화폐자금을 계획적으로 융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경제관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자금공급 측면에서는 원칙적으로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기능이 통합된 단일은행제도, 즉 일원적 은행체제를 바탕으로 중앙은행(조선중앙은행)이 자본주의 국가에서와 같은 통화정책기능 없이 모든 기업투자재원 및 가계부문의 필요자금을 재정자금을 활용해 책임지고 공급한다. 신용제도 측면에서는 일시적 유휴 자금을 흡수하는 일반주민의 저금과 국영기업의 예금제도가 존재하나 실제 활용도는 높지 않으며, 기관 및 기업소 대상의 대출은 국가재정계획을 근거로 조선중앙은행의 대부계획에 포함되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다. 지급결제제도 측면에서는 일반주민의 소비재거래는 현금으로 이루어지지만, 사회주의 소유형태의 조직 간 생산수단의 거래는 계좌이체 방식의 무현금 결제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통화통합을 포함한 남북 금융시스템의 무리 없는 통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의 일원적 은행제도가 자본주의적인 이원적 은행체제로 변화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볼 수 있는데 동서독 통일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이행 사례에 비춰볼 때 몇 가지 세부적인 과제가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이원적 은행체제로의 변화를 위해 중앙은행에서 상업은행 기능을 분리하고, 분리된 상업은행의 사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신규은행 설립 및 외국은행의 진입을 허용하여 금융기관을 다원화하여야 한다.
둘째, 여신에 대한 상환 개념이 없던 기존 사회주의체제에서의 많은 투자와 여신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정부 주도 하에 부실채권정리기구를 설치하고 필요 시 재정자금을 지원하여 금융중개 기능의 마비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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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우선적으로 은행 시스템의 이행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후에는 주식, 채권 시장 등 자본시장을 육성하여 통합된 금융시스템 내에서 다양한 경로의 자금중개기능이 작동하고 통화금융정책의 파급경로가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지급결제제도와 관련해 제도적인 측면에서나 IT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
다섯째, 환율제도를 정비하여 자유로운 국제교역이 가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여섯째, 통화정책 및 감독제도를 재정비하여야 한다.
은행의 통일금융 추진 시 고려해야 할 리스크
앞서 살펴본 북한 지역의 금융시스템 이행 및 통합 과정은 결국 원활한 경제 시스템의 작동을 위한 금융중개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으며 금융중개시스템의 핵심 기관인 국내 은행들은 각 단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원적 은행체제로의 이행은 필연적으로 은행 소유의 사유화를 동반한다. 이 때 국내 은행업은 직접적인 자본투자나 조인트벤처투자, 지점 진출 등을 통해 북한 지역에 상업은행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하면서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 지역에 진출하고자 하는 국내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함께 진출한다면 리스크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면서도 장기적인 사업 기반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 지역의 부실채권정리과정, 북한 지역 중소기업들의 창업, 인프라건설을 위한 대규모 자금공급 필요성 등도 국내 은행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경우에도 통일 이후 5년 이내에 동독지역의 지점을 300여개로 확대하였으며 서독 기업의 동독지역 진출과 정부의 인프라 구축 사업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면서 현재의 글로벌 리딩뱅크로 급성장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 금융시스템의 이행 및 통합과정에서 통일금융의 기회를 찾고자하는 은행들에게는 리스크 또한 매우 크다.
독일 통일 및 동유럽 체제 이행국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예외 없이 높은 인플레이션, 실질 통화량 및 신용량의 감소, 부실채권 누적에 따른 은행들의 여신 기피, 은행 사유화 과정에서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소기업 대출의 위축, 통일비용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에 따른 민간자금의 구축효과 등의 부작용이 최소한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또한 주택건설을 포함한 인프라 건설에 과잉투자가 발생하여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이는 금융, 경제적 혼란에 따른 리스크에 대응할 능력이 없는 은행들이 섣불리 통일금융에 뛰어들 경우 오히려 은행들의 생존마저 어려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또 하나의 큰 리스크는 북한이 내부적인 필요에 따라 통일과정이 시작되기 이전에 금융시스템 개혁 조치를 취할 경우, 금융시스템 변화 과정에서의 참여 기회를 다른 나라 은행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최근 상황을 보면, 2002년 ‘7.1 경제조치’ 이후 화폐를 통해 경제행위를 하는 화폐화를 어느 정도 허용하였으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근간인 계획경제체제가 지나치게 약화되고, 인플레 심화, 부정부패 만연 등의 부작용이 나타남에 따라 최근에는 다시 시장기능 확산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재정 부족, 소비재 부족 및 화폐퇴장에 따른 만성적 인플레, 국가계획에 반하는 시장 형성에 따른 불안정성 심화, 투자자본 축적의 어려움 등 많은 혼란을 낳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부작용이 북한의 자체적인 금융개혁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즉 시장 메커니즘을 반영한 경제운용과 화폐화에 대한 내재적인 압력들이 강해짐에 따라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자체적인 금융개혁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개혁은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금융제도를 일정 수준 자본주의화 하는 것, 즉 앞서 언급한 금융시스템 이행단계를 통제된 수준에서 실행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사유화는 장기과제로 미루면서도 국유 상업은행을 확대하는 금융시스템의 다원화, 해외금융기관의 진출을 포함하는 자유화,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구조조정, 해외 자본을 활용한 자본확충 등이 진행될 수 있는데, 이 때 중국, 일본, 심지어 미국 등의 자본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간 정치 군사적 긴장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가 현실화된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금융시스템이 변화하는 상당 기간 동안 우리 국내 은행들의 참여는 배제될 수 도 있음을 의미한다.
통일금융의 성공 조건
결국 통일금융이란 미래의 통일이 됐건, 조만간 시작될 수도 있는 북한의 금융개혁이 됐건, 그 과정에서 국내 은행들이 북한 금융시스템변화의 주요 플레이어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론 이는 정치 군사적인 긴장관계가 완화되어야만 가능하겠지만 우호적인 환경 조성 이전이라도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북한의 금융경제에 대한 심층적 연구, 전문가의 양성, 중국, EU 국가 등 북한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해외은행들과의 선제적인 협력관계 구축 등을 통해
대비해야 할 것이다.
통일금융은 단순한 상품개발 수준으로 대응할 수 있는 어젠다가 아니다. 북한지역의 새로운 금융시스템으로의 이행, 나아가 남북 금융시스템의 통합 과정에서 정책당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와 해외 네트워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내 은행들만이 통일금융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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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2024-05-03 09:12:10
